쿠팡 물류센터 집단 감염, 평등한 바이러스가 보여준 불평등한 세상
평등한 바이러스?
미국의 유명 가수인 마돈나는 코로나19를 ‘평등한 바이러스’라 말했다. 부자이든 가난하든 모든 누구나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며, 코로나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었다는 말이었다. 그의 말처럼, 치료제가 없는 이 끔찍한 바이러스 앞에서는 평등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코로나가 확산되자 부자들은 수영장과 체육관이 딸린 수 억 원짜리 호화 대피소(벙커)를 사들이거나, 하루 숙박비가 수백만 원에 달하는 외딴 섬으로 피신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셧다운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혹여 병에 걸리면 수천만 원의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병에 걸려 죽거나 굶어 죽거나 둘 중 하나를 강요하는 건 미국 사회의 모습만이 아니다.
K-방역이 멈춰선 곳

문재인정부와 언론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국식 방역(K-방역) 시스템을 칭송하고 있다.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 아프면 쉬라는 방역지침은 세계표준이 되었다. 하지만 저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방역지침은 노동자들이 일하는 작업장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을 쿠팡 물류센터 집단 감염이 여실히 보여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택배 물량이 급증했다. 늘어난 물량을 감당해야 하는 물류센터에는 인력이 더 필요하지만 기업은 정규직보다, 물량에 따라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단기, 일용직 노동자를 선호한다. 쿠팡 물류센터의 고용구조는 일용직 2,588명, 계약직 984명, 외주 120명, 정규직 98명으로 정규직은 단 2.7%인 것으로 확인됐다.
물류센터는 쏟아지는 물량을 단 시간에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애초에 노동자들이 거리 두기를 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으로 폭증한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를 좁은 공간에 욱여넣었기 때문에 거리 두기는 불가능하다. 또한 택배는 시간과의 전쟁이다. 더 빨리,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하는 것이 곧 경쟁력이 되기에 기업은 노동자를 쥐어짠다. 밤새 상하차를 하고, 물품을 옮기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올라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할 수 없다. 이를 관리해야 할 관리자들에게는 노동자들의 안전보다 물량 처리가 우선이다. 증상이 있고 아프면 3~4일 쉬라고 하지만, 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 노동자들에게는 먼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쿠팡 물류센터의 확진자 중에는 밤에는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낮에는 콜센터, 초등학교 돌봄지원을 하는 등 투잡을 뛰며 생계를 이어간 이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생업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대거 물류센터로 유입되었다. 항상 인력이 부족한 데다 특별한 숙련 기술 없어도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뉴노멀(새로운 표준, 기준)이 작동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대표적인 것이 비대면 산업의 활성화인데 자본가들이 가장 먼저 돈 냄새를 맡고 움직이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의 비대면 거래, 원격의료, 재택근무, 원격교육 등의 산업에 발 빠르게 뛰어들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문재인정부도 비대면 사업을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술과 결합할 기회로 적극적으로 키우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뭔가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 이윤을 찾아 새로운 시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코로나 이후 시대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질병이 덮쳤을 때 비용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시설 확충과 사회안전망을 요구해야 한다.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고용안정과 해고금지를 요구해야 한다.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 확산에 특히 취약한 저소득층,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재난과도 같은 감염 확산 속에서도 사람보다 이윤을 위해서만 작동하는 자본주의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