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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장 현대중공업, 그들에게 바랄 것이 없다

noheflag 2020. 6. 13. 12:58

 

죽음의 공장

지난 5월 14일 현대중공업지부는 남아있는 노동조합 소식지와 사측의 공식 통계를 모두 뒤져 과로사를 포함한 사망사고 집계 결과를 밝힌 바 있다. 창사이래 466명의 노동자가 과로사와 온갖 중대재해로 죽었다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 결과가 발표되고 며칠도 되지 않아 또다시 하청노동자 한명이 알르곤가스에 질식해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결과가 말해주듯 현대중공업의 중대재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만도 벌써 5명의 원·하청노동자들이 죽어갔다. 떨어져(2월 22일) 죽고, 물에 빠져(3월 17일) 죽고, 끼어(4월 16일, 4월 21일) 죽고, 질식(5월 21일)해 죽었다. 현대중공업은 노동자의 목숨 값으로 세워지고 운영되는 조선소라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원·하청노동자 모두 목숨을 위협받는 조선소

조선소노동자들의 죽음은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사망사고를 비롯한 중대재해 건수가 가장 많은 사업장이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다. 
한국 조선 빅3는 2016년부터 구조조정이 본격화됐다. 3사 모두 원·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현대중공업이 가장 강도가 높았다. 이를 반영하듯 2016년 정규직노동자노동자 4명, 하청노동자 8명이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이후 3년간 원·하청노동자들이 번갈아가며 한명씩 죽어가다 올해 들어 갑자기 5명의 원·하청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현대중공업에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은 포함되지 않음

조선업에서 하청노동자들의 산재사망률은 정규직노동자에 비해 상당히 높다. 하지만 현재 현대중공업에선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노동자들에게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집중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현대중공업에서 중대재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현장(조선, 특수선, 해양플랜트)의 정규직노동자(현대중공업지부의 조합원 수를 현장노동자로 가정했음)는 하청의 약65%정도로 격차가 상당히 줄었다. 한때 3~4배 많던 하청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정리되면서 사무직을 포함한 정규직노동자는 오히려 하청노동자보다 많을 정도다(2020년 3월 말 기준, 정규직노동자 13,846명, 하청 12,701명).
이를 반영하듯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정규직노동자 사망자수(16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던 하청노동자 사망자수(46명)는 2017년부터는 정규직노동자 사망자수와 근소한 차이(하청 5명, 정규직노동자 3명)를 보이고 있다.
적어도 현대중공업에선 정규직노동자와 하청노동자 모두가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과 비교해보면 더 확실해 진다. 이들 사업장은 정규직노동자의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극히 드물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다. 

 

왜 노동자들은 죽어가나

그렇다면 왜 유독 현대중공업에서만 원·하청노동자들의 죽음이 심각할까. 우선, 앞서 밝힌 것처럼 너무나 혹독했던 구조조정이 원인이다. 정규직노동자들이 분사와 희망퇴직으로 뿔뿔이 흩어지자 현장의 의사소통과 안전관리가 엉망이 되었다. 크레인, 중장비 운전 등이 하청업체로 넘어가고 안전관리부문조차 상당부문 외주화됐다. 십수년의 숙련된 정규직노동자들이 사라지고, 이 자리를 대체한 업체들은 삭감된 기성금을 만회하기 위해 안전은 신경쓸 여유도 없이 치열한 물량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가혹할 정도의 기성금 삭감(M/H단가 자체는 해마다 인상된다. 하지만 M/H산정기준을 조정하거나 각종 지원금을 삭감하면서 실질기성금은 줄어들고 있다)은 하청업체나 물량팀이 안전을 무시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붙였다.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10년 전보다 더 내려갔고, 업체들은 임금조차 주지 못해 4대보험 체납은 물론 걸핏하면 임금체불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을 지키면서 일하라는 소리는 굶어죽으라는 소리일 뿐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목숨보다 이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3세 승계를 위해 멀쩡한 회사를 쪼개고, 천문학적인 배당금을 대주주에게 몰아주면서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짰다. 사망사고가 난다해도 책임은 말단 현장관리자가 지고, 몇 백만 원의 벌금만 내면 된다. 노동부를 비롯한 공권력도 알아서 눈감아주고 생산에 차질이 없는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 해준다. 정작 모든 결정권을 가진 최고위 경영진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윤을 더 낼 수 있을까만 고민한다.

 


껍데기뿐인 안전대책

12명의 원·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던 2016년, 현대중공업은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두 차례나 받고 ‘안전관리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안전예산을 5년간 3,000억 원으로 확대하고, 안전부문을 경영지원본부에서 독립시켜 안전경영실로 개편한다고 했다. 이외에도 몇 가지 조치들이 있었다. 
2017년 이후 3년간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매년 한건씩만 발생하며 사측의 안전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윤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장이 안전할 리 없었고 2020년 2월부터 5월까지 단 4개월 만에 5명의 원·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현대중공업은 또다시 대규모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조선사업대표를 교체하며 사장급으로 격상 시켰다. 안전예산을 3년간 3,000억 원 증액하고 이중 1,600억 원을 현대중공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표준작업 기준정리를 위한 TFT구성, 안전혁신자문기구 운영, 협력사 안전관리역량 지원강화 등 2016년 보다 강화된 듯한 대책을 발표했다. 6월 5일 진행된 ‘신(新) 안전문화 선포식’에서 한영석사장은 하청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작업자에게 ‘안전작업 요구권’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신(新) 안전문화 선포식’을 사내TV로 청취했던 한 하청노동자는 “1,600억 원을 투자한다는데 도대체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나. 결국 우리를 더 쥐어짜겠지!”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 사측이 내놓는 안전대책이 허울뿐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안전하게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현실

한영석사장은 관리감독자와 안전관리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현장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해달라”, “불안전한 행동을 지적하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고민한 이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달라”
하지만 한영석사장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현장관리자들에게 찾으라고 하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다. 노동부가 내린 밀폐공간 작업중지 명령으로 최소 2주간 도장, 도크, 안벽 등에서의 작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하청노동자들은 강제로 무급휴업을 해야 했다. 노동법에 명시된 휴업수당은 꿈도 못 꾸는 하청노동자들은 작업중지가 서서히 해제되자 그동안 못했던 밀폐공간작업을 정신없이 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줄어든 월급에 작업중지로 일도 못한 하청노동자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반 토막 난 월급을 메우기 위해 무리한 작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

한영석사장이 야심차게 내놓은 대책 중 ‘안전작업요구권’(작업중지권이 아니다!)이 있다. 하청노동자도 관리감독자에게 안전개선을 요구할 권리를 준다는 것인데 현실성이 없다. 안전개선을 요구하는 순간 수많은 조치를 취하라 할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당사자나 소속팀, 업체로 전가될 것이다. 심지어 일을 못하게 되면 또다시 무급휴업을 가야할 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안전작업요구권’을 사용하겠나. 이는 생계와 안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짓이다. 

이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다. 1,600억 원이란 돈이 2016년에 이어 이번에도 투자된다는데 도대체 뭐가 바뀌고 개선됐는지 알 수가 없다. 다단계 불법하도급은 더 많아지고 걸핏하면 업체폐업에 임금체불을 당하는 하청노동자들은 1,600억 원이 안전에 투자되는 돈이 아니라 자신들을 또다시 쥐어짜내는 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윤이 중심인 현장에 안전은 없다

현대중공업에서 유독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한다고 해서 대우조선해양이나 삼성중공업이 안전한 현장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들 조선소에서도 혼재작업이 비일비재하고 수많은 안전사고들이 발생한다. 사람이 죽어야만 겨우 기사로 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사고는 알 수가 없다. 
조선소의 출근 시간이면 목발을 짚고 깁스를 한 채 출근하는 노동자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근처 정형외과에 가보면 수많은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다쳐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재은폐가 비일비재하고 웬만큼 다치거나 아프지 않으면 쉬지도 못한다. 오히려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가 해고되는 일도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대중공업이 최악의 현장이란 사실이다. 이번 특별근로감독기간에도 작업중지가 내려진 밀폐구역에서 부서의 지시로 버젓이 작업이 진행됐다. 일명 ‘도둑작업’이 주야를 막론하고 이뤄졌다. 겉으로는 안전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현실에선 어떻게 해서든 공정을 치고 나가려고 한다. 
아무리 안전조치를 강화한다고 해도 조선소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가능성은 낮다. 매번 그랬지만 안전보다 오히려 현장통제가 강화될 것이다. 그래야 책임은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이윤을 더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