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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정규직전환이 불러온 ‘공정 경쟁’ 논란

noheflag 2020. 7. 8. 12:06

▲ 6월 25일(목)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을 비롯한 연대 노동조합(정규직) 조합원들이 청와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규직화와 ‘로또취업’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요원의 직고용 문제가 취준생과 청년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중단을 요구하는 청와대청원은 29만 명을 넘어섰고 미통당과 보수언론들은 갑자기 ‘공정’을 부르짖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공기업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약속하며 시작된 논란의 씨앗은 ‘공정’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밀어 가고 있다. ‘별다른 노력도 없이 알바처럼 일해 왔던 비정규직’(?)들이 대통령 한마디에 정규직이 된다는 것은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깨뜨리는 역차별이자 불공정이라는 불만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기업의 비정규직이 ‘로또취업’을 할 때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은 기회를 빼앗기고, 정규직은 자신들보다 몇 배는 많은 정규직전환자들 때문에 고용과 임금이 위협당할 거라고 분노를 표출한다.

드러난 사실

‘알바로 들어와 연봉 5천의 정규직이 된다’는 오픈채팅방의 글이 가짜뉴스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들끓는 여론은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연봉 5천도 거짓이었고 알바도 거짓이었다. 오히려 2017년 5월 12일 이후 입사자는 공개경쟁채용으로 고용불안에 떨게 됐고, 정규직 전환 시 임금도 용역업체로 나가던 운영비용을 활용해 3.7%만 인상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즉, 정규직전환이라고 하지만 직고용 무기계약직이다. 그리고 정규직전환 방안을 논의하던 노·사·전문가협의회의 마지막 합의(2020년 2월 28일, 2017년 5월 12일 이후 입사자 공개경쟁채용, 자회사직고용 등이 담긴 3기 합의)에 정작 당사자인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동의한 적이 없다.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은 합의는 애초에 무효였다. 
이처럼 무늬만 정규직인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다. 일명 중규직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 전환을 정규직 전환이라 우기고 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사실들은 이번 논란에서 중요하지 않게 됐다. 불씨가 공정과 정의의 문제로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논란에 불을 지피는 세력

 

▲ 6월 29일(월) 미래통합당이 만든 '요즘것들연구소' 출범식과 함께 열린 '인국공 로또취업 성토대회'에서 참가자가 발언을 하고 있다.

미래통합당과 극우세력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특혜다, 역차별이다’며 논란에 기름을 붓고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고 있다. 하태경은 청년취업의 공정성 훼손을 막겠다며 ‘로또취업방지법’까지 발의했다.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된 마냥 설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재벌과 자본가들의 편에 서서 불평등과양극화를 확대해온 당사자들이 할 말은 아니다. 
보수언론도 신이 났다. 온전한 정규직도 될 수 없는 인천공항 보안검색요원들이 엄청난 특혜를 받은 노동자로 묘사되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정부의 정책으로 자회사 무기계약직이 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온전한 정규직화 요구도 특권을 요구하는 떼쓰기로 매도하고 있다. 
총선에서 수세에 몰린 수구세력들이 문재인정부를 깎아내리고 과대대표 되고 있는 ‘분노하는 청년들’과 영합해 다시금 존재감을 드러내려 애쓰고 있다. 


수세에 몰린 정부와 여당?

보수언론과 극우세력, 공기업 취준생들의 전방위적 공세에 정부와 여당이 수세에 몰린 듯하다. 
김두관의원은 페이스북에 "생계 걱정 없이 5년, 10년 취업 준비만 해도 되는 서울 명문대 출신들이나 들어갈 '신의 직장'에 '감히 어디서 비정규직들이 공짜로 들어오려 하느냐'는 잘못된 특권의 그림자가 느껴진다"는 글을 올렸다 맹공을 받고 있다. 청와대도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고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일각에서 불공정 문제를 제기해 안타깝다"고 해명했으나 현실을 모른다며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양극화문제를 해소하고 비정규직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극우세력과 일부 젊은 엘리트층이 딴죽을 걸고 있다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와 여당이 공격당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미통당만이 아니라 정부와 여당도 이 논란에서 중요한 것을 얻고 있다. 바로 자회사를 통한 무기계약직 전환이라는 꼼수가 마치 전향적 정규직화처럼 보이게 됐다는 점이다. 임금인상도 승진도 직무전환도 거의 되지 않는 중규직화, 또 다른 비정규직화라는 목소리는 이 논란에서 거의 사라졌다.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골치 아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는 여론의 힘을 얻게 됐다. 
“봐라! 사람들은 당신들의 정규직화도 부러워하고 불공정한 특혜라고 생각한다. 이거라도 감지덕지 하라!” 이것이 정부와 여당이 얻은 반사이익이다.

공정과 정의의 실체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에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평등, 공정, 정의 등 절대적 가치를 표현한다고 여겨지는 개념들이 사실은 계급적 이해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적용된다는 점이다. 
정규직화가 아닌 직접고용을 두고도 정규직노조와 고시생, 공기업취준생들이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를 외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이해에 맞는 정의로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수많은 통계와 연구에서 증명되고 있는 부모의 학력, 경제력이 자녀의 학력과 직장, 연봉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오로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자만이 높은 연봉, 양질의 노동조건을 누릴 수 있는 계층이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된다고는 생각하지만 자신들과 동등해서는 안 된다는 엘리트의식이 이들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다. 
이 사회를 실제로 움직이는 절대다수보다 능력이 검증된 소수가 특권을 누리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생각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다. 상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좁으면 좁을수록 이 관문을 통과한 엘리트층과 기회라도 가질 수 있는 소수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적 경쟁을 절대적 정의로 생각한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다

▲ 2019년 12월 27일, 「2018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 교육부 발표자료 참고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청년들, 이들 중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고 실제 성공하는 수는 상당히 적다. 즉, 분노하고 있는 공기업취준생, 공시생들은 전체 청년층을 대표할 수가 없다. 
서울권 4년제 대학 졸업자는 그 나이대 청년의 10%도 안 된다. 전체 대학졸업자 중 공무원, 공공기관, 대기업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비율은 13%대다. 대졸유무와 무관하게 청년세대 전체(20~29세, 약 640만 명)와 비교하면 1%대로 내려앉는다. 이 1%가 전체 청년층을 대변한다고 자임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렇게 좁은 사다리를 만들고 극소수의 엘리트층에게 과도한 특권을 주는 구조다. 상위 0.9%가 전 세계 부의 44%를 차지하는 사회가 과연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가.

 


비정규직일자리와 실업을 오가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제자리라는 현실 때문에 절망한다. 소수가 누리고 있는 기회조차 이들에겐 없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경쟁에서 밀려난 절대다수는 쓰다버리는 일회용품처럼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극소수가 절대다수를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는 계급적 입장을 초월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누구의 입장에 서 있을 것인가, 누구의 입장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사다리를 어떤 방식으로 통과하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운가를 제기해봐야 결국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에게 도움을 줄 뿐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