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노사정 합의안이 묻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noheflag 2020. 7. 8. 12:14
지난달 30일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코로나19’를 핵심의제로 한 ‘노사정 합의문’에 사실상 동의 했다. 그런데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들의 다수는 합의안의 취지인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많이 부족하다며 합의안에 반대했다. 그러자 김명환 위원장은 노사정 합의안을 대의원들에게 물어 승인받겠다며, 대의원 대회(7월 20일)를 소집했다. 사실상 김명환 위원장은 합의안 승인에 위원장 직을 걸었다. 한편으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합의안을 ‘야합’으로 규정하고 김명환 위원장을 ‘자본의 하수인’이라 비난하면서 20일에 있을 대의원 대회를 몸으로 막을 태세다. 대체 이 ‘합의’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 7월 1일(수) 새벽부터 노사정 잠정합의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모인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김명환위원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

노사정 합의의 목적, 취약계층 지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경제”가 “가늠키 어려운 침체”를 겪고 있는 것이 이번 노사정 합의안이 나오게 그 배경이다. 22년 전 IMF 위기 국면에서도 정부와 사장들이 노동계에 노사정 대화를 요청했을 때 그들의 목적은 위기에 처한 체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양보희생’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이번 합의라고 다를까? 1930년대 대공황에 비견될 만한 위기를 맞아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내줄 것이 없는 정부와 사장들이 노동자들에게 “양보와 희생” 말고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그런데도 겉으로 표현된 노사정 합의 정신은 많이 다르다. 상생과 협력의 정신을 바탕으로 노사정 3주체는 ‘코로나19’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취약계층의 보호와 지원”에 특히 공감한다. 그러나 합의문이 진짜로 그러한지는 따져봐야 알 일이다. 
여기에서 노사정 합의문의 5개의 장에서 다루고 있는 모든 항목을 분석하기에는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합의안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핵심과 본질만을 간단히 따져 보려고 한다.

고용유지지원금은 누가 부담하는가? 

제1장에서 다루고 있는 의제는 고용유지를 위한 정부 역할과 노사협력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고용유지지원금의 확대와 기간연장이다. 이것은 진즉부터 적용되었던 것이고 정부에서도 그 적용범위의 확대와 기간연장을 고려하고 있었던 사안이므로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런데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첫째로 ‘이것의 재원은 어디에서 나오는가’하는 점이다. 이것의 재원은 세금이나 정부의 빚으로 충당된다. 때문에 이것은 국민들이 갚아야 할 돈이다. 사장들이 이를 위해 별도로 내는 세금 따위는 없다. 오히려 사장들은 막대한 재정과 금융, 그리고 세금 면제나 유예 등의 지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국민들 중에서도 노동자민중들이 고용유지지원금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야 한다.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해고를 막을 수는 있는가?

 

▲ 아시아나케이오노동자들의 부당해고 심문회의 판정을 하루 앞둔 7일 공공운수노조 공항항공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아시아나항공 2차 하청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 8명은 무급휴직과 희망퇴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11일 해고됐다. 사측은 고용유지지원금도 신청하지 않고 무급휴직과 희망퇴직만을 강요해 470명 중 100여 명이 퇴사했고, 남은 노동자들은 무급휴직 중이다.

둘째로 그렇게 마련된 재원을 투입해서라도 취약계층의 해고를 막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시아나케이오나 이스타항공은 고용유지지원금조차 신청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와 휴직으로 내몰았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해 사용한 사장들이 노동자들을 해고할 경우 사장들은 몇 배의 배상금을 토해내야 한다. 그래서 버틸 여력이 바닥난 영세기업의 사장들은 ‘한시적인’ 고용유지지원금에 발목이 잡히기보다는 노동자들에게 해고나 무급휴직 강요한다. 이것이 영세기업이나 대기업의 하청업체들에서 노동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내쫓기는 이유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사장들만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쫓겨나는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사장들이 양보해야 할 것은 전혀 없는가? 사장들은 고용유지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면 된다. 개뿔! 노력한다는 말이야말로 사장들에게 주는 면책특권이다.  
이처럼 노사정 합의안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고용유지지원금 정책은 현실에서 이미 파탄 나고 있다. 이것이 ‘해고금지’를 담지 않았기 때문에 합의안에 반대한다는 주장이 생겨나는 이유다. 그런데 ‘해고금지’는 확실히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가능하다. 

사장들을 위한 ‘전폭적⋅적극적⋅신속한’ 지원 

제2장은 기업 살리기 및 산업생태계 보전 의제를 다룬다. 여기서 합의안은 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의 재정금융 상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노동자민중들에 대한 지원은 수십조 원에 불과하지만 이미 사장들에게 지원한 돈이 240조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이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그것의 실행이 의심스러운 반면, 사장들에 대한 지원책은 매우 구체적일 뿐 아니라 ‘전폭적이며, 적극적이고, 신속한’ 지원과 집행을 약속하고 있다. 이런 지원방책에도 불구하고 “법인세 인상,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재난극복을 위한 기업특별세” 같은 사장들이 부담해야 할 양보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민주노총의 김명환 위원장이 이런 합의안에 동의하고 자신의 소신이라고까지 밝힌 데는 그가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들의 고용이 보장될 수 있다’는 사장들의 논리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합의안은 정부와 사장들의 그런 정신을 곧이곧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살아도 노동자들은 죽는다. 이것이 노동자들이 목격하고 있는 진실이다. 

특고노동자 배제, 고용보험 노동자부담 증대 

제3장은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사회안전망 확충 의제를 다룬다. 이 장은 특수고용노동자나 자영업자까지를 포괄하는 전국민 고용보험 정책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시행될지 알 수 없다. 올 연말까지 정부에서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수립한다는 것이 전부다. 정부의 로드맵이 연말에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국회에서 정부의 로드맵을 법제화할 것인지는 더욱더 불확실하다. 
또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을 고용보험대상에 포함시키는 것도 의견수렴절차를 거치겠다고 한다.  이는 특정 사업주와 계약의 연속성(전속성)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고노동자들의 전속성을 따지면 불완전 고용상태에 있는 대부분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고용보험 대상에서 제외된다. 전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열겠다면서도 정부와 사장들은 특수고용노동자들 다수를 고용보험 대상에서 제외시킬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전국민 고용보험 적용은 재정확충을 필요로 한다. 이는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고용보험의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용보험 지출을 효율화”하고 사회적 논의를 거쳐 “고용보험료 인상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고용보험료 지출을 효율화”하겠다는 것은 실업급여를 줄이겠다는 것, 그리고 “고용보험료 인상을 검토”하겠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부담액을 늘리겠다는 것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논의하고, 노력하고, 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실행여부는 알 수 없다 

제4장은 국가 방역체계 및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 의제를 다룬다.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의 대책으로 거론하고 있는 “전문병원 확충, 권역별 지역조직 마련, 공공병원 확대, 권역별지역별 책임의료기관 지정 확대” 등은 이미 정부나 지자체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인데도 진전된 구체적 계획이 없다. 상병수당 도입 문제도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는 수준이다. 
취약계층에게는 전염병에 걸리면 해고되어 생계수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장들을 지원하는 일에는 ‘적극적, 전폭적, 신속한’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취약계층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상병수당과 같은 중요한 것은 ‘논의’한다는 수준에서 그친다. 사장들이 부담을 느낄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보건인력 충원 문제도 꼭 이와 같다.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절실하고 긴급하게 필요한 것은 보건인력 충원이다. 그런데 합의안은 “인력의 적정 수급을 위한 실태조사, 보건의료 인력 지원 전문기관 지정,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수립을 추진한다”고 했을 뿐 실제 인력채용의 구체적 계획은 전혀 없다. 실태조사를 하지 않으면, 전문기관이 지정되지 않으면, 종합계획이 없으면 당장에 필요한 인력을 뽑을 수 없는가?

더 써먹겠다는 것인가? 

제5장은 이행점검 및 후속 논의 의제를 다룬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행점검과 후속논의’을 이끌 중심기관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라는 점이다. 민주노총에서는 경사노위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이행점검과 후속논의를 경사노위에서 담당한다고 한 것은 민주노총을 여기에서 배제시키겠다는 것이든지, 이번 참에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든지 둘 중 하나다. 후자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부와 사장들은 이런 방식으로 민주노총 관료들을 더 써먹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엄청 들어가고 싶어한다. 

노사정 합의안이 진짜로 묻고 있는 것 

노사정 합의안은 경제위기의 산물이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사장들은 정부 지원에 의지해 버티고 있다. 사장들이 노동자들에게 줄 것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조차 정부지원에 의지해야 할 판이다. 합의안은 이런 현실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합의안의 어떤 그럴듯한 문구로도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생존의 위협에 내몰리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막다른 길목으로 내닫는 마당에 사장들이 자신들의 기업을 살리기 위해 노동자들을 막다른 길로 내몰지 않을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김명환과 같은 노동조합 관료는 자본주의 체제를 정상적으로 만들어서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존을 보장받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기업을 살리는 방책들을 고민하면서 노동자들의 양보와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결론 내린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다른 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경제위기 국면에서 노동조합 관료가 사장들과 한패가 되는 이유다. 이런 까닭으로 노사정 합의안은 위기에 처한 체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들이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들이 살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것인가를 묻고 있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