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하청, 또다시 대규모 임금체불
업체대표들 휴가직전 전자서명 거부
2주간의 여름휴가에 들어간 현대중공업에서 또다시 대규모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7월 31일 건조부 10개 업체, 도장부 11개 업체가 기성마감을 위한 전자서명을 거부했다. 매달 말일이면 그달의 기성금 세금계산서 발행을 위한 전자서명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건조부도장부 다수의 업체들이 적게는 4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2천만 원까지 기성금이 부족하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이렇게 되면 기성금 집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은 7월 임금 전액(약 105억으로 추정)을 못 받게 된다. 결국 월급날인 8월 10일, 건조부 1천 4백여 명, 도장부 1천 2백여 명 총 2천 6백여 명의 하청노동자들은 ‘임금전액을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아야 했다.
이에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는 8월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규모 임금체불을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책임지고 직접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로 니 탓하는 원하청 사장들
이번 임금체불은 지난 2년여간 있어왔던 임금체불보다 심각하다. 보통 30~50%의 임금이 체불되고 나머지는 며칠 후에 지급되곤 했는데 이번엔 임금전액이 체불됐다. 임금이 언제 나올지 기약도 없다.
하청사장들은 그동안 체불이 발생하면 4대보험 체납, 상생지원금(대출) 상환유예, 개인대출 등으로 돌려막기를 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한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은 정확히 산정된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용하지 않는 한 부족할 리가 없다며 8월 17일까지 여름휴가를 가버렸다.
정말 기성금이 부족한 것인지, 예전처럼 하청사장들이 뒤로 빼먹는 돈이 많아서인지 하청노동자들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악질적인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는 2년 넘게 반복되는 임금체불을 방관하고 있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이다. 그렇다고 하청사장들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하청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기성금을 얼마나 빼돌렸으면 원청조차 믿지 않겠는가. 그들은 인력파견 일만 하고서도 호의호식하면서 잘 살아왔다. 이제 조금 어려워졌다고 빚이 얼마니 하면서 죽는 소리를 해봐야 그 누구도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나서야 해결될 문제
현대중공업 원청과 하청사장들에게 아무리 ‘임금체불문제 해결해 달라’고 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난 2년여의 시간이 이를 증명한다. 임금삭감, 각종 체납과 체불, 폐업을 반복해도 당하는 사람들이 나서지 않으면 사장들은 ‘아직 살만한갑다’라고 생각한다. 빼앗기면 화내고 때리면 맞서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가들은 아직도 빼앗을 것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약 없는 임금체불 통보에 일손을 놓았다가도 해가 뜨면 다시 일하러 현장에 나간다. 그렇다면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에겐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일까. 그들은 패배의식에 찌들어 빼앗기고 두들려 맞아도 언제까지나 묵묵히 일만 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하청노동자들의 분노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 분노가 터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 다수가 직접 나서기 전까지는 먼저 일어선 소수의 노동자 투사들에게는 끈질긴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노동자의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왔다. 하청노동자들이 더 이상 노예이길 거부하는 날 현대중공업 원하청 사장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무덤을 파고 있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윤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