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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시작된 노조법 개악 - 빼앗길 것인가, 쟁취할 것인가!

noheflag 2020. 10. 14. 15:14

20대 국회에서 개악하려다 폐기되었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21대 국회에 다시 발의되었다. 한국-유럽연합 간의 FTA 조항 위반에 대한 심의가 조만간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EU FTA에는 국제노동기구(ILO)의 ‘노동 기본권 원칙을 존중·증진·실현하고 결사의 자유를 포함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는데, 한국은 핵심협약 비준을 수차례 약속하였으나 아직도 8개 중 4개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어서 EU에서는 합의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올해 안에 비준하지 않은 핵심협약 4개 중 3가지를 개정하여 통상마찰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노동권의 확대? 노동권의 축소!

정부가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은 노동자 결사의 자유를 제한 없이 보장해야 한다는 ILO핵심협약의 정신과는 반대로 오히려 현재 수준의 노동조합 활동조차 심각하게 제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내 노조활동 제한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임원, 대의원 자격 제한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유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2년에서 3년으로 상향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등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개정안이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여 국제노동기준에 맞게 노동권을 확대했다고 떠들지만 오히려 ILO가 지속적으로 권고한 특수고용노동자 및 하청·간접고용노동자의 노동권 문제, 노조 설립 신고제도 개선, 파업과 민·형사 책임 문제 등의 내용이 통째로 빠져있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제일 심각한 것은 노동자들의 쟁의권을 제한한 것이다. 이 법이 통과된다면 생산에 지장을 주는 파업을 할 수 없으며, 병원노동자들이 회사 로비에서 연좌농성을 하는 것도, 마트 노동자들이 마트 안에서 피케팅을 하는 것도 불법이 될 수 있다.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의 무기인 ‘생산을 멈추는 파업’의 권리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노동권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력화시키는 꼴이다. 
또한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의 현장 활동을 제한하여 산별노조 간부들이나 타사업장 노동자들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탄압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과거 수많은 노동자들을 감옥으로 보냈던 ‘제3자개입금지법’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게다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은 노동자의 교섭과 쟁의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지엠 사측이 임금협상을 1년이 아니라 2년 주기로 하자는 안을 내면서 노조의 반발을 사는 일이 있었다. 이번 일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정부의 단협 기간 연장과 지엠의 임협 기간 연장 요구가 같은 맥락 하에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이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와 결합할 경우, 소수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된 날로부터 최소 4년 이상 교섭요구를 할 수 없고, 이는 실질적으로 단체교섭권이 박탈된 것과 다름없게 된다.

 

▲ 출처 : 금속노조


더 내놓으라는 자본가들

지난 9월 14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은 노동권 강화에 치우쳐 노사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우려가 큰 만큼 사측의 방어권 보완이 필요하다"며 'ILO협약 관련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자본가들은 ▲해고자·실업자의 사업장 출입 원칙적 금지 ▲모든 형태의 직장점거 파업 금지 ▲'대체근로 금지'규정 삭제 등을 요구했다. 이미 제한된 노동자들의 권리를 더욱 분명하게 금지시킴으로써 이번 기회에 노동자들의 손발을 확실하게 묶어서 자신들의 이윤 보따리를 지키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김종인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은 이번 기회에 노동법과 노사관계법도 개정하자며 고용유연성을 확대하고 귀족노조의 특권을 없애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박근혜정부 및 20대 국회에서 시도했다 좌초된 노동법 개악을 또다시 꺼내든 것이다.

투쟁하지 않으면 밀릴 수밖에 없다

현재의 경제 위기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자본가들에게도 위기이다. 노동존중을 떠들고 노동할 권리를 아무리 내세워도 민주당 정부가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정부인 이상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것은 당연하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제기한 노동법 개악에 대해 이낙연 당대표 등이 반대 입장을 내놓았지만 귀족노조, 노동법 사각지대 등을 운운하며 다만 시기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제든 여야가 함께 노동법 개악 카드를 들고 나올 수 있다. 김대중정부 때 정리해고법과 파견법이 만들어졌고, 노무현정부 때 비정규직법이 통과된 것처럼 문재인 정부에서도 노동법개악이 강행처리 될 수 있다. 노동자 탄압과 노동법 개악에 있어서만큼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야가 따로 없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친노동이라는 포장지를 둘러쓰고 친자본 행보를 거침없이 걸어가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대하라는 ILO 협약 비준을 빌미 삼아 오히려 노동자들의 권리를 후퇴시키고자 사활을 걸고 개악안을 밀어붙일 것이다. 이번에 발의된 노조법이 통과되면 노동자들이 힘겹게 지켜온 노동자의 기본권은 빠르게 후퇴할 것이다. 쟁의권은 매우 제한될 것이고, 생산을 멈출 수 없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힘을 잃고 밀릴 수밖에 없다. 
상황은 급박하지만 투쟁은 쉽지 않다. 어려운 조건이다. 하지만 싸우지 않으면 밀릴 수밖에 없다. 전태일3법과 더불어 노동자의 가장 최소한의 권리인 노동3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절실하다.


권보연


ILO협약이란?

ILO 협약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기본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정한 국제노동기준이다. 이중 세계 어느 노동자라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ILO가 정한 보편적 국제 규범이 ‘ILO 핵심협약’이다. ILO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금지 △차별금지 △아동노동금지 등 4개 분야에 걸쳐 8개 협약으로 이뤄져 있다.
91년에 ILO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이 협약 중 차별금지와 아동노동금지 2분야의 4개 협약만 비준이 이뤄져 있다. 나머지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4개 협약은 아직 비준을 하지 않은 상황이다. 
ILO 회원국 중 76%가 8개 협약을 모두 비준했고, 85%가 7개 또는 8개 협약을 비준한 상황이다. OECD 36개 회원국 중에는 31개국이 8개 협약을 모두 비준했고, 우리나라는 미국 다음으로 가장 적은 4개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