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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현대차지부, 임금합의 체제에 갇힌 노동조합 운동이 만들어낸 노사협조주의의 상징

noheflag 2020. 10. 14. 15:58

▲ 9월 28일 현대자동차지부는 2020년 임금교섭 조인식을 가졌다.

이상수집행부는 집행초기부터 임금동결을 떠들어댔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임금인상 요구에 맞서 회사가 원했던 임금동결을 기어코 쟁취해냈다. 성과금도 예년에 비해 훨씬 적다. 솔선해서 임금동결까지 했으면서도 그들이 구걸해낸 성과금 액수는 대단히 하찮다. 
현대차는 비록 경기침체로 흑자폭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상당한 흑자를 기록하고, 이 때문에 주가가 코로나 이전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런데도 회사는 한편으로 경기침체로 한층 격화된 가난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현대차ㆍ기아차 노조로 향하게 함으로써,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상수와 같은 노골적인 협조주의 세력의 도움에 힘입어 임금동결을 밀어붙였다.


누가 이상수를 대신할 수 있었을까?

노골적인 친회사 세력인 이상수집행부가 아니라, 보다 전투적인 현장조직(그런 것이 있다면)의 집행부였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조금 덜 노골적이기는 했을 것이지만, 그래서 대중을 속이는 훨씬 세련된 방식을 썼을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현대차노조를 거쳐 간 많은 집행세력들은 이 점을 충분히 보여줬다. 이상수집행부의 형편없는 합의안이 조합원총회에서 한번에 가결되었다는 것이 이 점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그넘이 그넘’이라는 것을 조합원들은 10수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차노조의 역대 집행부들은 눈앞에 보이는 실리(돈)을 위해 장기적인 전망과 대의를 팔아넘겨왔다. 그들은 노동조합의 단결력과 조직력, 그리고 노동자연대와 계급운동의 전망을 실리와 맞바꿨다. 그 결과 이제 임금조차 따내는 것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됐다. 지난 5년 동안 ‘현대차ㆍ기아차’ 노조의 연봉은 계속해서 하락했다.    
그러므로 다른 누가 이상수를 대신했다고 하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압력을 거스르면서 ‘싸우면 쟁취할 수 있다’는 전망을 모범을 통해 보여주려는 용기를 발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현대차ㆍ기아차’ 노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별도합의문의 만행

그런데 이상수집행부의 공로?는 임금동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노사 공동발전 및 노사관계 변화 위한 사회적 선언]이라고 이를 붙여진 별도합의문에서 이상수집행부는 지금까지 회사에서 애타게 바라던 요구들을 몽땅 들어주었다. 첫째 : 전기차 생산확대에 따른 인원감축과 이에 따른 전환배치, 둘째 : 품질향상을 빌미로 노동조합을 회사의 품질관리부서로의 전락, 셋째 : 신차양산 이전에 인원합의 강제 등이 그것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인원이 덜 필요하다?

▲ 현대자동차지부 2020년 임금합의 별도요구안 [노사 공동발전 및 노사관계 변화를 위한 사회적 선언]

첫째, 회사는 전기차 생산이 확대되고 내연기관(엔진)차의 생산이 줄게 되면서 없어지는 일감(공정)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 정년퇴직자 공정의 인원을 충원하지 않겠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그에 따른 전환배치도 요구해 왔다. 전대 하부영집행부에서는 이런 회사의 요구에 합의해주었다. 하부영에 이어서 이번에 이상수집행부가 이런 내용에 재합의해 준 것이다. 
그런데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바뀌면 정말로 생산에 필요한 인원이 줄까? 아니다. 지금 전기차 생산능력으로는 오히려 같은 성능의 내년기관차에 비해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다만 회사에서 전기차에 필요한 배터리, 전동모터 그리고 이와 관련된 부품을 외주화해 생산하면서 완성차에 필요한 인원이 줄어든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일종의 사기다. 
이 중에는 완성차 공장 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모듈부품도 많다. 그래서 현대차나 기아차 노조에서는 전기차 관련 모듈부품을 사내에서 생산할 것과, 단체협약에 따라 정년퇴직자 공정에 신규로 인력을 충원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회사는 굳이 배터리 생산공장과 전기차 관련 부품의 생산공장을 새로 짓거나 하청을 주고 인건비가 싸고 쉽고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고용해 생산함으로써 완성차에서 일하는 정규직 인원을 줄여 이윤을 극대화하려 한다. 이는 사회적으로보면 그만큼 고용조건이 악화되는 것이고, 완성차의 정규직 노조도 조합원 수가 점점 줄게 되면서 그 힘이 약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노동조합을 회사의 품질관리부서로 만들려는 계획 

▲ 현대자동차지부 2020년 임금합의 별도요구안 [노사 공동발전 및 노사관계 변화를 위한 사회적 선언] 중

둘째, 최근들어 ‘현대차ㆍ기아차’ 자본은 품질문제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품질을 핑계대면서 수백 명의 조합원들에게 징계를 내리기도 하고, 기아차의 경우 불량을 낸 조합원에게 경고장을 날리기도 한다. 인터넷에는 연일 불량차를 만드는 현장의 영상이나, 기사가 유포되어 소문이 꼬리를 물고 확대ㆍ전파되고 있다. 악의적인 가짜뉴스까지 만들어져 퍼지고 있다. 
이런 ‘영상이나 뉴스, 그리고 가짜뉴스’의 목적은 현대차ㆍ기아차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커다란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귀족노조라는 딱지 위에 얹혀진 비난거리의 효과는 배가 된다. 차를 사려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불량차 만드는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을 향한 분노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사람들의 이런 심리들을 이용해 이득을 챙긴다. 이런 뉴스나 영상의 출처는 이로부터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상수와 같이 회사의 생존과 번영을 출세의 질긴 동아줄로 여기는 이들은 그런 상황을 이용해 조합원들의 이해를 팔아넘겨 출세의 동아줄을 단단히 움켜잡으려 한다.  
별도합의문에서 이상수집행부는 ①노조 집행 체계 내에 ②사업부 노조 체계 내에 ③부서별 노조 대의원 체계 내에, 중층의 회의체계를 만들어 품질에 관해 회사와 정기적으로 그리고 상시적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이어야 할 노동조합이 그 꼭대기에서부터 맨 아래 대의원 체계에 이르기까지 회사의 품질관리 부서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합의안에는 “품질이 회사의 생존과 고용안정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용안정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놓고 있지만, 이것은 품질이라는 매개를 통해 회사의 경쟁력 논리로 조합원들을 꽁꽁 묶어놓겠다는 철저히 계산적인 합의문구다. 이것의 결과는 어떨까? 만약 차가 잘 팔리지 않으면 회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가 차를 잘 못 만들어서 차가 안 팔리게 되었으니 임금이든 고용이든 어떤 식으로든 그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품질이 고용안정의 근본’이라고 했던 합의는 차가 팔리지 않게 되면 ‘임금삭감과 해고’의 돌이킬 수 없는 명분으로 둔갑할 것이다. 차가 잘 팔릴 때라도 품질을 빙자한 갖가지 현장통제가 조합원들에게 족쇄를 채울 것이다. 대의원들은 품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며 일하지 않고 회사관리자들과 노닥거리게 될 것이다. 회사는 이를 방조하면서 대의원들의 타락을 조장할 것이다. 노동조합 상층은 관료화되어 출세주의자들의 기관으로 전락할 것이고 현장 조합원들과 철저하게 유리될 것이다. 결국 조직력과 단결력을 상실한 현장은 회사의 통제에 “꼼짝마”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겨우 품질관련 몇몇 합의 가지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전망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음의 세번째 합의는 이런 전망이 충분히 현실화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대의원들의 인원합의권 무력화 시도

셋째로 살펴볼 것은 양산차(Mcar) 이전에 인원협의(M/H협의)를 마쳐야 한다는 합의다. 인원합의권은 현장 대의원들에게 있다. 단협에 따르면 인원합의가 끝나지 않으면 신차를 양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차양산 때면 인원합의권을 가지고 있는 대의원들의 힘이 막강해지고 회사는 수세에 몰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신차양산 때면 인원합의권을 가진 대의원들은 그동안 쌓아두었던 ‘부서의 현안문제들-조합원들의 요구사항’들을 대부분 관철시킨다. 계획한 일정대로 신차를 양산하려면 회사에서도 현장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상층의 집행부들과 다르게 대의원들은 현장조합원들과 직접 대면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압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조합원들의 압력을 직접 받는 대의원이 조합원들의 요구를 받아 인원합의를 하지 않고 버티면 양산일정을 무작정 미룰 수 없는 회사에서 일정하게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현장조직력의 대부분이 대의원들의 인원협의권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회사는 신차의 양산일 이전에 인원합의가 되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었다. 양산차 이전에 인원합의를 끝내야 한다는 합의는 이상수집행부 이전에도 있었다. 문서로 합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투성으로 세간에 알려진 박유기집행부는 “양상일정과 인원합의는 무관하다”며, 회사의 양산차를 투입을 저지하려던 대의원들의 행위를 불법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식으로 박유기집행부는 현장투쟁을 박살내는 데 앞장섰다. 다음 대 하부영집행부는 이를 문서로 확약해 주었다. 노골적인 친회사 세력인 이상수가 대의원들의 인원합의권을 무력화시키려고 회사의 요구를 대변했던 것은 이런 역사적 후퇴들의 결과였던 셈이다. 이처럼 현장조직력의 최후의 보루라 할만한 대의원들의 인원합의권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제 회사는 대의원들과의 인원합의가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양산차를 라인에 올릴 수 있게 됐다. 몇몇 대의원들은 인원합의 전 양산차 투입에 저항해 라인을 잡기도 하고, 조합원들에게 작업거부를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면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 대의원을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재판결과에 따라 이 대의원은 해고될 수도 있고, 수억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금을 떠안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다른 대의원들은 감히 라인을 잡거나 작업거부를 지시할 수 없게 된다. 
회사는 통제가 강화된 현장에 차등성과급제와 같은 더 큰 통제와 분열공세를 가하려고 할 것이다. 수년 전부터 현대차ㆍ기아차 자본이 차등성과급제를 도입하려 했다는 것은 현장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현장조직력이 약화되면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지금과 같은 높은 임금을 지불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양산일정을 준수하라’면서 양산전 인웝합의를 주장할 때 회사는 차를 사려는 고객들에게 ‘때맞추어 차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적기생산 적기공급)는 논리를 펼친다. 그러나 회사가 계획된 신차 양산일 이전에 인웝합의를 끝마치기는 아주 쉽다. 회사가 대의원들의 인원요구를 양산일 이전에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는 이렇게 쉬운 방법을 마다하고 인원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책임을 대의원들에게 뒤집어씌우면서 생산에 필요한 인원을 줄이려고 한다.
회사에게 양산일정 준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투입되는 인원을 줄여서 비용을 아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실업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더 나은 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아무리 끓어 넘쳐도 회사는 그런 사회적 요구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기차 부품생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이 이들은 있는 일자리를 줄이고,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 일자리로 전락시키고, 정규직이 하던 일을 외주화시켜 하청으로 빼돌린다. 이런 일들이 현대차ㆍ기아차 자본가들에 의해서만 저질러질까? 아니다. 모든 자본가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하고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한다. 자본가들의 생존과 이윤추구는 이미 ‘사회적 요구ㆍ사회 구성원의 생존’과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것이 이 사회의 운영을, 이 사회의 운명을 이들에게 내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 비관적인 전망이 현실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반전의 힘이 등장해 노사간 투쟁의 새로운 장을 만들어 낼 것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매우 노골적인 이상수와 같은 집행부가 회사의 요구를 대변해 조합원들의 장기적인 이익을 내팽개친 것은 단지 일시적인 현상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차ㆍ기아차 노동조합 운동이 운동의 장기적인 전망을 상실하고 전투성을 잃으면서 회사의 경쟁력 논리에 빠져들어 협조주의적인 노선으로 전락한 탓이다. 이상수는 그것을 아주 인상적으로 확인시켜주었을 따름이다. 

 

새로운 전진의 힘

이런 일이 다만 현대차ㆍ기아차 노조에서만 일어나는 것일까? 얼마전 민주노총의 가장 꼭대기에서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 민주노총 김명환 전위원장은 노동자들을 희생시켜 자본가들을 살리려 한 노사정합의를 밀어붙였다. 다행이 실패했지만 말이다. 자본가들의 경쟁과 이윤추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민주노총 상층에서든 단위사업장의 상층에서든 노동조합의 상층 관료들은 자본과들과 협력하면서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길로 내닫고 있다. 이들에게 계급적 연대의 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전망과 계급적 연대의 정신을 가진 선진노동자들이 탄생하고, 이들과 평범한 조합원들의 저항과 투쟁이 결합되는 힘을 통해서만 자본가들과 손잡은 노동조합 관료들의 통제를 뚫고 앞으로 전진하는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김정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