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계약직 노동자, 산재 승인받다
한국노총이 있는 대기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그래서 사실상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불안정한 계약직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했고 승인을 받았다. 그 이후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전히 일을 하다가 죽어가고,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일터에서 일하다가 각종 질환을 겪는 노동자들은 입증하기 어려운 점, 회사에서 낙인 찍히는 두려움 등으로 인해 산재 신청조차도 어려워하고 있다. 아직 노동조합 없는 사업장이나 규모가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직업병에 대해 ‘일하면 당연히 아프다’ 라는 인식이 아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를 받은 한 노동자의 이야기는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일하다가 죽고 일하다가 아픈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앞으로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질문1.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번 인터뷰(10호 14페이지 참고) 이후로 산재신청이 승인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처음 인터뷰 이후의 상황을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 당사자 대동해서 현장 검증한 이후, 부산에 있는 ‘업무상 질병 판정 위원회’에서 승인되었다고 문자가 왔어요. 그리고 전화로 제가 준비할 서류들을 안내해줘서 그런 걸 준비했어요. 저는 병원에서 산재신청을 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상받을 건지 등등을 이야기 나눈 뒤에 증명서를 병원에서 근로복지 공단에 보냈어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질문2. 어떤 부분을 보상 받으셨어요?
▶ 수술비 포함해서 치료비용을 받았어요. 대부분 개인적으로 의료보험 들어놨던 것이 있어서 비급여로 책정된 15만원정도 받았어요. 근골격계가 산재신청으로 바로 연결되기 어렵다고는 하는데 저는 금방 승인이 나서 다행이었어요. 설명해주는 서류를 보니까 ‘일 하고 있으면 무조건 복귀시키고 그동안 못받은 돈이 있으면 지급해야하고 해고가 되었으면 무조건 복직, 쉬고 있으면 급여의 평균 70%를 생활비로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더라고요. 제도는 잘되어 있는데 몰라서 신청 못하거나 승인이 잘 안나서 제도를 이용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질문3. 회사나 동료들한테 따로 연락온 건 없었나요?
▶ 현직 관리자나 동료들한테 따로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계약만료로 회사를 나와서 그런 거 같아요. 제 자리 바로 다음에 하는 동생이랑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현장에서는 의도적인지 아닌지 아무 말 없었다더라고요. 다만 엘지 회사 안전관리담당자가 와서 ‘다른 걸 바라고 산재 신청을 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흘리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질문4. 현장에서는 어떤 점이 바뀌었나요?
▶ 초반에는 도와주러 자리에 왔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러다가 말았대요. 변화된 건 없는 셈이죠. 제가 일하던 3계 라인이 1계 라인 야간조로 가게 되면서 제가 일하던 라인 전체가 오프(off)가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신청했을 때와는 여러 조건들이 바뀌어 버린 것 같아요.
질문5. 바뀐게 없다니 너무하네요. 이번 산재 신청하고 승인받으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사실 뒤에 하는 친구한테 미안한 마음에서 시작했거든요. 내가 문제제기를 많이 안 해서 뒷사람까지 아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승인 받고 다른 걸 바란 거 아니냐고 했을 때 제가 계약직이니까 정규직을 시켜달라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한 거 같은데, 사실 정규직을 하라고 해도 고민이 될 만큼 너무 힘든 사업장이거든요. 회사에 이렇게 서운하고 억울한 게 있는데 그냥 못나가겠다 싶었고 맨날 회사가 떠드는 ‘법대로 하고 있다’에 대해 ‘그럼 나도 법대로 한번 해볼게’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퇴사한 이후니까 무서울 것도 없다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승인이 났으니까 사례가 생긴 거잖아요. 한번이라도 사례가 만들어졌으니 신청할 수 있고 승인받을 수 있다는 것에 회사가 놀라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계약직이어서 가능했을 거에요. 거기 안에 있는 정규직들은 불이익 받을까봐 일자리가 불안하게 될까봐 신청을 못하는 게 많을거에요. 실제로 건강 상태가 위태로워 보이지만 병원에서 입원하라고 하거나 장기간 치료받으라고 해서 회사에 괜히 찍힐까봐 걱정을 하더라고요. 결국 참게 되고 내 몸 상태에 대해 현실 부정하는 사람들까지 봤거든요. 그런 사람들한테도 어느 정도 본보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는 해요. 그럼 좋을 거 같아요.
질문6. 산재 신청에서 승인까지 최종적인 소감 하나 부탁드려요.
▶ ‘아, 이겼다’ 싶은거요? 현장 조반장들이 낌새만 보여도 ‘산재? 해도 안될걸?’ 이런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랬는데 해보니 되었잖아요. ‘해도 되던데?’ 하는 마음이 들어서 좋았어요. 그래도 제가 승인 받았다고 ‘신청하세요!’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회사 내부 사정을 아니까요. 오히려 계약직이고 만료가 된 상태에서야 산재를 편하게 신청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계속 동일한 현장으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저도 산재 신청할 용기를 쉽게 낼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회사가 안된다고 했던 거 해보니까 덜 억울한 거 같아요.
질문7. 마지막 질문인데요, 이런 현장 상황을 바꿀 방법은 없을까요?
▶ 노조를 활성화해야 해요. 여기 현장은 한국 노총같은 사측 편을 강하게 드는 노동조합이라서 힘든 거라 생각이 들거든요. 노동조합이 있으면 그래도 노동자들을 최소한으로라도 지켜줄 수 있으니까요. 여기는 노조가 너무 약해요. 노동조합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거 같아요. 산재같은 경우도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는 조금 더 쉽게 다가간다고 하더라고요.
확실한 증거를 잡고 공론화시켜서 사람들한테 알려내고 밖으로까지 알려내는 걸 해야하는 거죠. 노조파괴공작 했다가 사과를 했던 S기업도 있고 거기도 결국은 생겼잖아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거 같아요. 그게 먼저인 거 같아요.
제가 앞으로도 제조업 현장에서 일을 또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힘들기도 했고 저는 설계가 전공이거든요. 그렇지만 이런 현장들이 정말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 안에 사람들이 일하고 있거든요.
진진